신의 나라 성탄절

초계(草溪) |

神州圣诞节

세계 기독교가 인정하는 중국의 기독교 전래시기는 경교(景敎) 전도사 알로펜 (Alopen 阿罗本)이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해인 당(唐) 태종(太宗) 정관 9년(635년)이다.

이는 1623년 섬서 서안성 주지(周至)에서 출토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国碑, 이하 “경교비”)와 20세기 초 감숙돈황 석실에서 발견된 “서청메시아경”(序听迷诗所经) “일신론”(一神论) “등의 경교 경전에 기인한다.

당시 중국은 강력한 당(唐)의 대외 개방정책으로 서역(西域)과 동아시아의 사신(使臣), 유학생, 상인 등이 자유로이 왕래하였고, 이로 인해 중국 고유 전통문화에 외래 문화가 흡수 융합(融合)되는 국제성을 띠게 되었다.

이 시기에 431년 에베소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이위이성론(二位二性论) 주장으로 인해 이단(里端)으로 정죄되어 페르시아 등지로 흩어져 발전한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이 무역 대상들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무역로를 거쳐 당의 대외개방 정책에 따라 중국에 첫 기독교를 전파하게 되었다.

경교비에 의하면 635년(당태종 정관9년) 시리아를 떠나 중국에 이른 알로펜을 단장으로 한 경교선교사 일행이 대신(大臣) 방현령(房玄齡)의 영접하에 장안(长安)으로 입성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당 태종(太宗)은 그의 장서루에서 경교 경전을 번역토록 하고, 교리에 대해 질문하며 중국에서의 전파를 윤허(允许)하였다. 뒤이은 고종(高宗)도 태종의 정책을 승계하여 알로펜을 진국대법주(镇国大法主)로 봉하고, 전국에 경교 사원을 건축하도록 하여 경교의 전파를 도왔다.

고종이 죽은 후 측천무후(则天武后)와 예종(叡宗)의 치세하에 경교는 일시적으로 불교와 도교도의 박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현종(玄宗)의 즉위로 경교는 다시금 교세를 회복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경교 선교사 17명이 흥경궁(兴庆宫)에서 예배를 보며 황족과 궁인들에게 경교를 전하는 특혜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숙종(肅宗), 대종(代宗), 덕종(德宗) 대(代)에도 경교는 사원을 건축하고 성탄절 때는 하사품을 받는 등 황제의 총애 속에 발전하였다. 당태종에서 무종(武宗)까지의 210년 사이 경교는 대체로 황실의 우대정책 속에 계속된 선교사들의 사역 동참과 경교 경전의 번역 및 의술을 통한 사역 등으로 교세를 중국에서 확장해 나갔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马可罗)의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원(元) 세조(世祖) 쿠빌라이(忽必烈)의 어머니와 황후 등이 경교 신자였다고 한다. 세보 지원(至元) 12년(1275)을 전후하여 경교는 북방의 대도(大都), 감주(甘州), 영하(宁夏), 천덕(天德), 서안(西安)에 주교구를 세웠으며, 많은 몽고 귀족과 관리가 신자가 되어 병역과 조세 면제의 특권을 누렸다.

중국에 있어서 개신교의 선교 역사는 1807년 영국 런던 선교회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马礼遜)이 중국에 온 것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당시 청 정부는 폐관(闭关), 금교(禁敎)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고 역대 한족(汉族) 왕조보다 더 철저히 유교를 숭상하였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중국에 파송된 모리슨은 선교사로서는 중국 땅을 밟을 수가 없어 아편 무역밀매로 악명이 높은 동인도회사의 통역직원 신분으로, 후에는 영국의 상무감독 네피어(W.J.Napier)의 중국어 비서 겸 통역관 신분으로 광동십삼행(广东十三行)에 거주하며 선교 사역을 추진하였다.

모리슨의 이때의 전도 활동은 중국인의 냉담한 반응으로 1814년 채고(蔡高)에게 첫 세례를 준 이 후, 중국에 거주한 27년 동안 10여 명에게 세례를 주는데 그쳤다.

한편, 모리슨은 중국에 거주하는 동안 1810년에는 『신약ㆍ사도행전』을 번역하고, 1813년에는 『신약전서』를 완역ㆍ발행하였다. 1818년에 말라카(Malacca)에 영화서원(Anglo-Chinese College, 英华书院)을 세워 중국 최초의 서양식 교육 제도로 인재를 육성하였고 또한 서원 안에 인쇄소를 설립하여 선교용 책자들을 제작하였다. 1819년에는 밀네(William Milne)와 힘을 합해 『구약성서』를 완역하여 1823년 『신천성서』(神天圣书)라는 이름으로 출간, 그의 사후에 허드슨 테일러 등이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광주, 복주, 하문, 영파, 상해를 개방하기로 한 “남경조약” 체결 이후, 기독교는 불평등 조약의 “비호”아래 중국 선교와 교회 개척에 박차를 가하였다. 유럽과 미국 등지의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파송된, 중국어와 성경 번역 등에 기반을 닦은 선교사들은 이미 확보된 5개 개항장을 거점으로 중국 내 여러 도시에 교회, 학교, 병원 등을 세우며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戴德生)의 “중국내지회”(The China Inland Mission) 창립으로 오지 선교 사역이 크게 발전되었다. “중국내지선교회(CIM)”는 현재 OMF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CIM이 설립된 이래, 허드슨 테일러 후손에 의해 현재까지 140년간 줄곧 선교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서양 제국주의의 대 중국 침략정책이 강화되었고, 중국(청조)은 양무운동, 변법운동, 입헌운동을 통해 점진적인 자구책을 모색하였다. 이는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12년 2천여 년 간의 전제 군주제가 막을 내리고 중화민국이 수립됨으로 기독교는 합법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 기독교 신자는 서양 선교사의 비호를 받는 “교민”에서 합법적인 “국민”의 신분으로 변화되었다. 청말에는 중국인 신자는 자력으로 교회를 세우고자 할지라도 법률상 자유롭게 토지를 구매할 수 없었고, 외국 선교회의 이름을 빌어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국 이후 중외(中外) 모든 인사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고 믿을 수 있게 되고 냉대를 받지 않게 되었다. 비록 민국 초의 군벌의 할거와 전란, 북벌, 중국 공산당과 소비에트 정권의 출범,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의 혼란의 시기를 겪지만 법률적, 사상적, 사회적으로 선교사와 중국인 전도자들은 전에 없는 자유를 누리며 전도, 출판, 교육, 교육, 의료, 사회복지 등 전 사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교회에 진일보한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과 12월 국민당정부의 대만 철수는 중국 대륙교회로 하여금 중국공산당의 통치와 국가 이익에 저촉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는 궁극적으로 반드시 소멸된다고 믿는 중국공산정권의 지배 하에 놓이게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이래 중국은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역사적인 변혁을 겪었고, 수십년 간 세계와 이념의 벽을 쌓는 숙면의 시기를 지내게 된다.

만리장성(万里长城)은 오랜 역사동안 중국을 외부로 부터 지키는 장벽이었으며 중국인과 오랑캐를 차별하는 구분선(区分线)이었다. 중국역사에서 부침(浮沉)을 거듭했던 역대 왕조(王朝)에 의해 끊임없이 증축 · 개축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외부로 차단하려는 그 놀라운 집념이 수천키로미터의 만리장성 벽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 이념(理念)은 중국 역대 왕조에 의해 이어져 온 만리장성의 또 다른 이념의 장벽이었다. 중국의 문은 이로 인해 더욱 굳게 닫혔고, 오랑캐와는 다른 새로운 이념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 이념의 만리장성에 그들은 반세기 이상을 갇혀 지내게 된다. 그러나 부도옹(不倒翁)이라 불리며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등소평(邓小平)은 그 유명한 남순강화를 통해 중국의 빗장을 풀면서 중국역사의 수레바퀴를 대외개방(对外开放)에 적극적이었던 당(唐)시대로 돌려 놓았다.

지금 중국에는 1억이 넘는 기독교 신자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의 대도시에는 현재 그들의 역사에서 항상 배척(排斥)되었던 동서남북의 외이(外夷)들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12월 25일이 되면 중국인들이 이속(夷俗)으로 터부시했던 성탄절(圣诞节)을 축하하고 있다. 신의 나라(神州)라 불리웠던 중국에, 아기 예수의 거룩한 탄생을 위한 성탄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 외이 (外夷) : 오랑캐
* 이속 (夷俗) : 오랑캐의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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